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밑에 위치한 나라 <과테말라>
과테말라는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밑에 위치한 나라로 수도는 국호와 같은 과테말라 시티(Ciudad Guatemala, Guatemala City)이다. 국토 면적은 10만 8,889㎢, 인구 약 1800만 명 선(2020)이다. 2014년 하반기 기준으로, 현재 과테말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약 8,000명으로 추정된다. 과거 마야 문명의 후손국가 중 하나로 주민들 중 상당수가 마야인이다. 그리고 마야의 피라미드 중 과테말라에 있는 피라미드도 많다. 마야는 보통 대외적으로 멕시코의 저지대 문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나라에도 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과테말라 국호
과테말라라는 이름은 나와 틀어 Cuauhtēmallān에서 온 것으로 '많은 나무가 있는 땅'을 뜻하거나, 마야어로 '많은 나무'를 뜻하는 말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제국의 콩키스타도르인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 이 지역을 정복할 때 그를 수행하였던 틀락스칼텍 군사들이 이 지역에 이 이름을 붙였고 국명이 되었다.
과테말라 국기
과테말라 국기(Bandera de Guatemala)는 두 가지 색인 하늘색과 흰색으로 구성되며 아술 이 블랑코(Azul y Blanco, '청백')로도 불린다. 하늘색은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상징하고 하얀색은 평화와 안정을 의미한다. 국기 정중앙에는 과테말라의 국장이 배치돼 있다. 구성은 케찰(Quetzal)이라는 새, 과테말라의 독립일인 1821년 9월 15일이 적힌 문서,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월계수로 이뤄진다. 국장에 그려진 새이자 과테말라의 국조인 케찰은 사람에게 잡혀서는 살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새이기에 '자유 혹은 죽음(Libertad o Muerte)'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이는 곧 조국의 자유를 상징한다. 과테말라의 화폐 단위 케찰도 이 새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국장이 새겨진 깃발은 정부 및 공무용으로 사용되며 민간에서는 국장이 없는 깃발을 별도로 사용한다.
과테말라 역사
과테말라는 마야 문명이 번성했던 곳이다. 과테말라라는 이 나라의 국명도 '나무의 땅'을 의미하는 마야어 K'iche'에서 왔다고 추정한다. K'iche'와 같은 의미의 나와틀어 Cuauhtēmallān가 변하여 과테말라(Guatemala)라는 이름이 되었다. 마야 문명은 대게 멕시코 남부 지역에 많이 지분이 있어 멕시코 문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잉카 문명이 페루, 에콰도르와 칠레, 콜롬비아, 볼리비아 심지어 북부 아르헨티나까지 공유했던 것과 같이 마야 문명도 멕시코 남부는 물론 이 나라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벨리즈, 온두라스, 니카라과가 공유하던 문명에 속한다. 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후 잠시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와 함께 멕시코 제1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823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República Federal de Centroamérica)을 구성했다. 그러다가 1838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별개 국가로 독립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여기저기 끼어들며 빨대를 꽂고 이권을 챙겼다. 미국은 자기네들 발 밑에 있는 이 나라를 우습게 보고 사실상 자국 보호국으로 여기며 이것저것 마음대로 했다. 심지어 1940년대엔 미국이 현지 주민 5,500여 명에게 매독 생체실험을 한 적이 있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과테말라 정부는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의 나라 땅에서 생체실험을 버젓이 한 행동인지라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51년에는 토지개혁을 공약하고 당선된 민주정부로 인하여 미국계 과일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이권이 빼앗길 것을 우려한 CIA는 군부세력을 지원하여 민주정부는 쿠데타로 무너지고 만다. 이 나라의 쿠데타 실상을 보고 체 게바라는 미국에 대해 본격적인 환멸감을 키웠다고 한다. 이 상황을 이른바 과테말라 내전이라고 하는데 과테말라는 이후 1960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36년간 내전에 시달려야 했다. 시작부터 과테말라에서 뭐든 맘껏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이 자기네 국적 식품회사 이권 지키려고 시작한 쿠데타가 뿌린 씨앗이었으며 그런 만큼 더 처절했다. 민주파는 어떻게든 합법적 선거로 얻은 권력을 되찾아야 했고 유감스럽게 미국이 지원해 주는 군부는 전혀 민주파에 권력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의 힘이 더 셌다. 과테말라 내전이란 군부 출신인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이 1951년에 혁명행동당(Partido Acción Revolucionaria)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농지개혁(그것도 토지의 무상몰수가 아니라 유상매입 방식으로!) 등의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문제는 과테말라에서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던 미국 유나이티드 프루츠 사의 농장을 국유화했다는 점이다. 유나이티드 프루츠 입장에서 구스만이 내세운 매매가는 너무 낮았다. 아르벤스의 개혁을 목격한 아이젠하워 정권은 미국의 이익에 반(反)하며 미국 주변의 공산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해 아르벤스 정권을 공산주의 정권이라 간주하고 쿠데타를 시도했다. 미국은 군과 정부 내부의 반 아르벤스파를 결속시킴과 동시에 CIA에서 추진한 일명 "PBSUCCESS 작전"으로 인접국인 온두라스에서 반아르벤스파인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의 반정부군을 수도로 침투시켰다. 결국 군의 지지를 상실한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은 실권하고 1954년 6월 27일에 망명길에 올랐다. 그 후 미국의 전면적인 지원하에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 정권은 국내 기초를 다진 후 선거에서 아르마스파의 반공연맹만을 내세운 독재체제로 나아갔는데 이에 반발한 군 내부의 아르벤스파와 아르마스파가 대립하면서 아르벤스파의 청년장교들이 군을 이탈하여 반정부군이 되어 게릴라 활동에 나서면서 과테말라의 정국은 내전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후 1957년 7월 26일에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가 암살되고 미겔 이디고라스 푸엔테스가 집권했지만 군 내부의 대립은 더욱 심각해져 갔다. 그러다 1959년 1월에 쿠바 혁명으로 쿠바가 공산화되자 아르벤스파는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1960년 11월에 푸엔테스 대통령을 몰아내고자 아르벤스파를 중심으로 청년장교단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다. 그래도 지도자들은 산속으로 도망쳤고 1962년에 또다시 무장반군을 결성했다. 이들은 쿠바를 경유한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 작전을 펼치며 항전했고, 이에 대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정권 측은 쿠데타를 반복하면서 죽음의 부대에 의한 좌파정당과 게릴라에 협력적인 과테말라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 등으로 대응했다. 이에 국제적인 비난이 높아지자 1986년에 기독교민주당의 비니시오 세레소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1987년에 민족화해위원회가 발족했다. 또한 1990년대 초에 소련 해체로 냉전이 붕괴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더 이상 이들을 지원하지 않게 되자 1996년 12월 29일에 과테말라 정부와 과테말라 민족혁명연합(URNG) 사이에 평화합의가 성립되었다. 이후 화해법이 제정되어 내전 시 정치적 범죄에 대한 면책을 인정하는 한편 약 20만에 달하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낸 학살과 고문, 실종에 관한 죄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이 제정되었다. 처음에는 역대 정치지도자와 군 간부는 이러한 범죄에 직접 관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면제가 예상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관계자들이 국내 재판소에 세워지게 되었다.
2009년 9월엔 펠리페 쿠사네로 전 대령이 농민 6명의 실종과 관련된 죄로 징역 150년형을 받았고, 2013년 5월엔 1982년부터 1983년에 대통령을 지낸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 전 장군은 마야계 이실(Ixil) 원주민 1,800명을 살해한 죄로 금고 80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헌법재판소의 개입으로 판결이 뒤집어졌고, 2015년에 시작된 재심이 진행되던 중인 2018년에 사망하여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여담으로 리오스몬트의 딸 주리 리오스가 2015년 대선에 출마했는데, 득표율 6%로 참패했다. 내전 당시 엄청난 규모의 원주민 학살이 있었고 이를 세상에 까발린 리고베르타 멘추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 과테말라 사법부는 학살을 자행한 군인들에게 징역 1만 2천 년을 선고했다. 2016년 2월 27일에는 1980년대에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강간한 전직 군 간부 등 2명에게 징역 360년을 선고했다. 벨리즈와는 국경문제로 갈등이 있으며 2016년 4월 22일에 국경지역에서 과테말라 소년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되면서 갈등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7년에 과테말라 의회는 옆나라인 엘살바도르와 함께 미성년자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18년 6월 3일에 과테말라의 푸에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25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구조과정이 진행되면서 사망자가 60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망자는 85명으로 늘어났고, 실종자도 더 늘어났다. 거기에다 사망자가 99명으로 늘어나면서 사망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사망자와 실종자가 300명에 달하자 과테말라는 사실상 구조작업을 중단했고 국제구호손길이 잇따라 이어졌다. 그러다가 6월 8일에 화산이 다시 폭발하자 과테말라 정부는 대피령을 발령했다. 그리고 6월 17일에 수색령을 공식적으로 중단했고 110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2018년 10월 12일에 다시 화산이 분화하자 인근 지역 주민 62명이 대피했다. 2020년 11월에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로 국민의 부담을 가중하는 것과 비교해 교육과, 건강, 인권을 위한 예산은 줄어들었다. 국민들이 이에 반발하며 시위가 발생했다. 2021년 4월에 과테말라의 파카야 화산이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1960년대에 사라졌던 고대 마야의 유물이 과테말라로 반환됐다.
과테말라 언어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고 과테말라인들의 모국어이다. 과테말라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북중미 스페인어 방언대 중/남부 방언대로 스페인 본토와는 다른 표현도 있고 마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멕시코 시티의 스페인어와도 다르다. 그렇지만 남부 치아파스와 칸쿤 등에서 쓰는 멕시코 스페인어와는 매우 닮았다. 그래서 멕시코로 몰래 들어오는 과테말라나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인들이 스스로 우리는 남부 멕시코 사람이 다며 우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중이 높아서 끼체어를 비롯한 각 토착어가 많이 쓰이고 있고 예전에는 마야 문명의 일부였기 때문에 마야어와 마야어 계통의 언어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과테말라 사회
과테말라의 도시화율은 역내에서 가장 낮다. 다른 국가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확연히 느리다. 2016년 도시화율이 50%를 돌파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48%가 농촌에 거주한다. 도시화를 촉진한 것은 1960년부터 1996년까지 일어난 과테말라 내전이다. 원체 가난한 데다 과테말라 내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정부군의 학살과 초토화 작전으로 생지옥이 된 농촌을 벗어나 주민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이농현상이 발생했고, 상당수는 도시 변두리의 빈민가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문맹률은 중남미 전체를 통틀어 아이티 다음으로 높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15세 이상 문해율이 83%였다. 즉 성인 인구의 1/6이 문맹이다. 과테말라보다 훨씬 가난한 온두라스와 니카라과, 볼리비아도 이 지경은 아니다.
과테말라 종교
가톨릭 50%, 개신교 41%로 세가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 동유럽 및 서아시아 끄트머리 레반트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그리스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인 시리아 정교회세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인데 전체 인구의 3%나 차지한다. 인디언은 가톨릭 성인뿐만 아니라 토착종교의 신도 동시에 섬긴다.
과테말라 정치
과테말라는 대통령이 국가수반과 정부수장인, 다당체 체제의 민주공화국인 대통령제이다. 행정권은 정부에 의해 행사되고 입법권은 정부와 의회에게 모두 부여된다. 단일국가이며 169개국 중 97위라는 민주주의 지수를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 자연
과테말라의 지형은 크게 북부 평야지대, 고원지대, 태평양 저지대로 삼분된다. 북부 평야지대는 멕시코 및 벨리즈와 접경하고 카리브해와 맞닿은 곳으로 국토의 1/3을 차지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다우지로 인구밀도는 희박하며 열대우림이 평야를 뒤덮는다. 티칼 등 마야 문명의 여러 도시국가 유적지들이 이 북부 평야의 열대우림에 묻혔다가 발견되었다. 고원지대는 중부 및 남부에 있으며 국토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중앙아메리카 최고봉인 타후물코 산(4,211m)이 여기 서쪽에 있다. 기후가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화산재 덕분에 비옥하므로 국민 대부분은 여기에 몰려 산다. 수도 과테말라시티도 여기 중간에 있다. 다만 화산지대 특성상 지진과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때때로 재해를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태평양 저지대는 남쪽 해안지대를 가리킨다. 여기는 플랜테이션 작물을 재배하는 대농장과 목장이 많다. 고원지대와 태평양 저지대는 비가 적당히 내리고 보통 우기인 5~11월에 많이 내린다. 한때 삼림이 무성한 나라였는데 내전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빈곤과 농업, 목축을 위한 벌목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다. 높은 고도에 열대우림 지역이라 산맥에는 운무림들도 많이 있고 이곳마다 고유종들이 서식하지만 방문하기는 매우 위험한 지역들이 많다. 고원지대 중심에는 아티틀란 호라는 최대 크기의 호수가 있는데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150㎞에 위치, 해발 1,562m에 있는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칼데라 호수이다. 호수 주변에는 산페드로 산(Volcan San Pedro, 3,020m), 톨리산(Volcan Toliman, 3,158m), 아티틀란 산(Volcan Atitlan, 3,535m)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 아티틀란 호반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촌락이 있다. 고대 마야인들과 관계가 깊은 호수인데 체 게바라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정치를 잊고 호수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이다. 아티틀란 호에서만 살던 아티틀란논병아리(Atitlán grebe)는 1960년대에 도입한 배스 등 외래종 어류들에게 잡혀 먹히고, 호수가 관광지로 개발되어 수질 오염과 서식지 파괴 등이 겹치면서 1989년에 멸종하였다. 재규어, 맥, 금강앵무새 같은 경우는 벨리즈, 멕시코와 인접한 북부 평야지대에 현재 주로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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