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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러나라 이야기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작은 독립국가<룩셈부르크>

by 초긍정 알콩이랑 놀자💕 202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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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에 공식 채택되었다. 붉은색,흰색,푸른색의 3색은 룩셈부르크 대공가의 문장에서 취했다.

룩셈부르크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작은 독립국가이며, 공식 이름은 룩셈부르크대공국이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가 만나는 유럽의 북서부지역에 있다. 주로 야트막한 산과 울창한 산림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작은 도시나 마을에는 하얀 주택들이 중세에 지은 성과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매우 산업화가 진전된 공업국가에 속하며 공장이 남서부 지방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의 이름은 룩셈부르크이다. 룩셈부르크는 입헌군주국이다. 나 사우가 의 대공이 군주이자 행정부의 수반 역할을 하는데 군주의 자리는 장남이나 장녀가 세습한다. 룩셈부르크는 세 지방으로 나뉘며 각 지방의 장은 정부가 임명한 지사가 맡는다. 세 지방은 12개 주로 나뉘어 있다. 룩셈부르크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같은 이웃 국가와 문화적으로 밀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투철한 독립 정신을 간직해 왔다. 국민은 대부분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돼지고기와 민물고기이며 즐기는 음료는 맥주와 포도주이다.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 독일어, 레체부르크어의 세 가지이다. 독일어의 한 방언인 레체부르크어는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쓰인다. 초등학교에서는 대부분 독일어를 사용하며, 중등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신문은 독일어로 인쇄되고, 법정과 의회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전 국민의 95% 이상이 로마가톨릭교를 믿는다. 6세부터 15세까지의 어린이는 의무교육을 받는다. 국제비교과학대학교가 하나 있고 기술학교와 직업학교가 서너 개 있다. 성인은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수도:룩셈부르크

공식 언어:프랑스어,독일어,레체부르크어

정부형태:입헌군주국

통화:유로

주요 생산물:보리, 포도, 오트밀, 감자, 밀, 가축, 철강, 화학, 플라스틱, 타이어

 

🌳룩셈부르크의 자연환경

룩셈부르크는 아르덴과 봉페이(좋은 땅이란 뜻)의 두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부의 아르덴지역이 전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그 나머지가 봉페이지역이다. 아르덴지역은 독일의 라인란트에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까지 뻗은 산계의 일부로서 군데군데에 있는 계곡은 낮은 구릉이 깎여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 있는 높이 559m의 부르크플라츠산이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봉페이지역은 전체적으로 기복이 완만한 고원을 이루고 있으며 일부 평지가 강을 따라 형성되오 있다. 아테스트강, 알제트강, 모젤강, 쉬르강이 이 지역을 가로질러 흐른다. 봉페이지역은 중요한 농업지대이다. 기후는 대체로 서늘하고 습기가 많다. 평균기온은 1월에 약 0도이고 7월에 약 17도이다. 강수량은 남서부지방이 연간 1,000mm인 반면에 남동부지방은 300mm에서 410mm밖에 되지 않는 등 격차가 심하다. 눈은 아르덴지역의 고지대에서나 볼 수 있다.

 

🌐룩셈부르크의 경제와 역사

룩셈부르크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철강 생산국이다. 아르베드라는 제철회사가 이 나라에서 종업원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에서 쓰이는 강철을 대부분 생산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70년대에 룩셈부르크에서 철강 생산이 일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임에 따라 정부는 산업을 다각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오늘날 룩셈부르크에는 첨단기술 산업체가 매우 많이 들어섰다. 이러한 공장에서는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부품을 주로 생산한다. 많은 외국 회사가 이곳에 화학제품, 플라스틱, 타이어들을 생산하는 현지 공장을 세웠다. 수많은 외국 은행도 지점을 개설했다. 그 밖에 관광업도 주요 산업이다. 봉페이지역에서는 보리, 오트밀, 감자, 밀, 따위를 재배한다. 전 국토의 약 절반이 농지이지만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에 농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6%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인 룩셈부르크는 주로 유럽연합 안에 있는 다른 회원국들과 무역을 한다. 주요 수출품은 철강제품이다. 주요 수입품은 식품과 기계류이다.

룩셈부르크가 독립국가로 탄생한 때는 아르덴 백작이 지금의 룩셈부르크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하고 이곳에 요새를 건설한 963년이다. 룩셈부르크는 1443년에 부르고뉴의 필립왕이 이 지역을 정복한 이래로 1684년에 프랑스, 1697년에 에스파냐, 1714년에 오스트리아, 1795년에 다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 1세가 패배한 후 1815년에 열린 빈의회에서는 룩셈부르크를 네덜란드가 공식적으로 통치하는 대공국으로 정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1890년에 빌헬미나가 네덜란드의 여왕이 되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법률에서는 여왕의 통치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여 자체군주를 옹립했다. 이 법률은 1912년에 개정되어 나 사우가 의 마리 아델라이데가 대공녀로서 이 지역을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재 2차 세계대전 때 한동안 독일이 룩셈부르크를 점령했다. 1944년에서 1945년까지 룩셈부르크 북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1945년에 룩셈부르크는 국제연합에 가입했다. 1948년에는 베네룩스라는 경제연합에 가입했고, 1949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 1950년대에는 몇몇 경제 기구 결성에 참여하여 유럽국가들의 경제연합체인 유럽공동체를 탄생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1993년에는 룩셈부르크와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회원국들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협조를 위해 유럽연합을 결성했다, 오늘날 룩셈부르크는 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룩셈부르크시에는 유럽의회 사무국과 유럽사법재판소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몇몇 기관이 있다. 2000년에 룩셈부르크의 국가원수인 장이 대공 자리에서 물러나고 앙리 대공세자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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