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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러나라 이야기

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보츠와나>

by 초긍정 알콩이랑 놀자💕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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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 <보츠와나>

 

보츠와나는 "츠와나족의 땅"이라는 뜻의 츠와나어 단어다. 내전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물론 치안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소매치기 등 몇몇 비상 상황에 대비만 잘한다면 관광하는 데에는 큰 문제는 없다. 표어는 '비(Pula)'로, 아마도 전 세계의 국가들과 자치 지역들을 통틀어 제일 짧은 표어이다. 전 문화권은 물론이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특히나 비가 소중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츠와나족 문화에서 비는 또한 행운과 결부된다. 따라서 표어는 국가가 번영하고 국운이 번창하기를 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풀라는 보츠와나 통화의 이름이기도 하다. 해당 문구는 국장에도 새겨져 있다.

 

보츠와나의 지리

수도는 가보로네(Gaborone). 국토면적 58만 1,730㎢로 남한 면적의 약 5.8배이며 프랑스 본토보다도 약간 크다. 하지만 국토에 비해 인구는 많지 않아 약 200만 명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인구 밀도도 km²당 3.4명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국토 전체가 해발 1,000m가량의 고지대이나 평탄하다. 서부 지역 대부분은 칼라하리 사막이 뒤덮고 있어서 인구는 남아공과의 접경지대인 남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추와나인 자체가 보츠와나보다 남동쪽의 남아공(400만 명)에 더 많이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국토의 가운데에 마카디카디(Makgadikgadi) 분지가 있고 북쪽의 오카방고 강 삼각주에는 사막 한가운데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삼각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삼각주로 카방고 강 습지대는 관광 스폿으로도 인기가 많다.

 

보츠와나의 역사

보츠와나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한 민족은 부시맨으로 알려진 코이산족이었으며, 17세기에 지금의 남아공 지역에서 반투족의 일파인 츠와나족이 이주해 오며 여러 부족 국가가 생겼다. 보츠와나 지역은 내륙의 사막 지역이었으나, 19세기 중후반 보어인들이 금을 찾아 보츠와나 일대로 침입해 들어오게 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1880년대 초반이 되자 독일 제국도 가세하자 이에 위기를 느낀 츠와나족 추장들의 요청으로 보츠와나 지역은 1885년 보어인과 옆동네 나미비아에서 세력을 넓히던 독일 제국을 견제하려 했던 영국이 베추아날란드라는 이름으로 보호령으로 만든다. 처음에는 영국은 보츠와나 지역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말 그대로 보호령인 상태가 유지되었으나, 세실 로즈가 남아프리카 회사를 설립하고 남아프리카 지역 전체를 직접 통치하려 하면서 이런 상황에 위기가 왔다. 츠와나족의 세 추장은 1895년 영국으로 건너가 보츠와나를 식민지로 만들지 말라고 요구했고, 결국 보츠와나는 완전히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로즈가 계획한 케이프 식민지와 로디지아를 잇는 철도가 보츠와나에 부설되었다. 다만 보츠와나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던 영국은 보츠와나에 대해서는 대체로 방치해서 철도 외에는 거의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고, 보츠와 나인을 남아공의 광산에 노동자로 보내기만 했다.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 설립 이후 남서아프리카가 남아프리카에 편입되자, 남아프리카 정부는 내친김에 보츠와나 역시 남아프리카의 일부로 편입하려 하였다. 다만 남아프리카는 영국 정부와의 협상을 지속하였지만 남아프리카 국민당 집권 이후 양국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결국 물 건너가 버렸다. 1966년 보츠와나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세레체 카마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츠와나족의 망과도 부족 추장의 후계자였으나, 영국 유학 시절 사귀게 된 영국 여성 루스 윌리엄스과 결혼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던 시절 남아프리카 연방의 반발로 인해 보츠와나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면서 1956년 카마는 보츠와나에 일반인 자격으로 귀국이 허락된다. 이후 카마는 '보츠와나 민주당'을 창당하고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1966년 보츠와나는 독립을 이루게 된다.

 

보츠와나의 정치

민주주의 국가로, 아프리카 대륙에선 독립 이래 민주주의를 계속 유지한 극히 드문 케이스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 달리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가 개도국 지도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독재의 늪에 빠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2대 대통령인 퀘트 마시레가 장기 집권한다는 비판이 일자, 야당 '보츠와나 국민전선'이 대통령의 임기를 5년 중임제로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하였고, 이에 마시레가 이 법안을 승인하면서 1998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다만 내용상으론 지금도 집권 세력이 선거에서 늘 이긴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보츠와나 민주당이 독립 직후 총선에서 80.4%를 득표하며 대승했고, 21세기 들어서도 득표율은 과반수 조금 넘는 수준까지 줄었으나 아직은 건재한 편이다. 특히 소선거구제의 힘을 입어 57석 의석 중 45석을 차지한 바 있다. 2014년 총선에서도 45석으로(기존 44석,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서 그렇다) 여전히 과반수 이상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의 NGO 기관인 세계 사법정의 프로젝트에 의하면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법치가 잘 이뤄지는 나라이며, 세계에서도 99개국 중 25번째라고 평가했다. # 이코노미스트지가 조사하는 민주주의 지수 조사에서도 2021년 기준 30위를 기록해 벨기에나 그리스, 이탈리아보다도 높게 평가받았다. 의회의 대통령 임기 제한(2기 10년) 법안이 승인되고, 부통령을 포함한 정부 주요인사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시행되고, 산족의 강제이주 정책에 대해 무장봉기로 저항하는 게 아니라 원주민이 정부를 제소해서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아내는 등 아프리카에 편견을 가진 사람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사법과 행정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굴러간다. 다만 그러고도 정부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원주민을 쫓아내려고 하고 있기는 한데, 사법결정을 뒤집으려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국명이 츠와나족의 땅(보츠와나)인 것처럼 츠와나족이 국민 대다수를 이루지만 다른 부족도 많고,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가 츠와나족의 부족장이었던 것처럼 야당 지도자들 또한 다른 부족의 지도자 출신이다. 그러나 보츠와나 헌법에는 선출직 공무원이 되려면 부족장의 지위를 버려야 한다는 규정이 있고 세레체 카마와 야당 지도자들 모두 부족장 지위를 버리고 정치인이 되었으며 이후 다른 부족장들도 부족장의 지위를 버린 뒤에 정치에 뛰어든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투표한다. 그래서 야당 후보는 자기 출신 부족의 선거구가 아니라 대도시에서 지지를 받는 전형적인 여촌야도의 선거결과가 나온다. 역대 대통령 임기를 봐도 2기 10년 제한 법안이 통과한 것이 2대 대통령의 14년째였는데, 당시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차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임기만료 전에 퇴임했다. 부통령에 2인자를 임명해서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풍습인지라 상술한 대규모 부패 사건으로 쫓겨난 전 부통령을 대신해 새로 임명된 부통령이 (정상적으로 선거를 해서) 3대 대통령이 되었고, 4대 대통령은 군 총사령관으로 복무하던 1대 대통령의 아들이 2대 대통령 말기에 퇴역[13]하여 의원에 당선-3기 대통령에게 부통령으로 임명-대통령 선거 당선이라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취임, 국정을 수행한 후 역시 2기 10년 만에 정상적으로 퇴임했다. 그야말로 스무스한 정국 안정... 여기서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는데, 4대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서 치러진 5대 대통령 선거에서 4대 대통령이 엉뚱하게도 자신이 속한 보츠와나 민주당이 아닌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 비록 정치를 하려고 츠와나족의 부족장 지위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보츠와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츠와나족이 여전히 그를 부족의 지도자로 여기는 상황에서 어쩌면 보츠와나 역사상 최초로 집권여당이 바뀔 수도 있었으나, 선거결과는 보츠와나 민주당의 승리였다. 국내 최대 민족의 사실상의 수장이며 1대 대통령의 아들이고 4대 대통령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건만, 국민들은 거물 정치인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닌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를 선택했다. 거슬러보면 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가 소속 지역의 부족장이 부족장 지위에서 물러나서 야당 소속 의원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선거로는 의원이 되지 못해서 '대통령 선출의석'이라는 방식으로 '선거 결과를 무시하는 것에 준하는' 방식으로 의원이 되어 부통령직을 유지한다는 방식을 취하면서 쭉 초대 정부의 약점이 되기도 했다.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정권의, 이렇다 할 흠 없이 일을 잘 해온 부통령조차도 해당 부족의 세력권에서 선거로 부딪히면 깨져버릴 정도로 부족장의 입김이 강했는데, 긴 시간 민주주의가 이어지면서 이젠 그런 입김을 무시하고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할 정도로 의식이 커진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 중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 나라는 19위의 모리셔스뿐이었다. 이 나라가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임을 고려하면 아프리카 본토에서는 1위인 셈. 2위는 44위 한 남아공 때문인지 영 상태가 좋지 않은 옆나라 짐바브웨에서 넘어오는 사람도 많다. 이에 보츠와나 정부는 가축 전염병 방지 명목으로 짐바브웨 경계선에 철책을 두르기도 했다.  1966년 독립 당시에는 군대가 없는 나라였으나, 이후 백인 정권 치하의 로디지아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 군대가 게릴라 잡겠다고 자꾸 국경을 넘어와 깽판을 쳐서 그런지 1977년 군대를 창설한다. 징병제로 육군 1만 명 정도이고 공군도 있어서 캐나다가 운용하던 CF-5 11기를 운용하며, 2015~17년 경 FA-50이나 그리펜으로 교체하려고도 했지만 예산, 정치적 혼란, 국내 경제 격차, 이웃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군비경쟁을 조장한다는 등의 이유로 취소되었다. 2019년 2월 22일에 보츠와나 정부가 코끼리 사냥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환경단체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리고 결국 4년 만에 코끼리 사냥 금지조치가 해제되자 동물보호단체들은 코끼리가 대량 도살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2020년 2월 7일에는 코끼리 사냥 허가증에 대한 경매를 시작한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사실 이 문제는 코끼리 항목에도 있지만 인근 나라들의 코끼리 밀렵이 너무 심한 나머지, 지능이 높은 코끼리들이 보츠와나 땅으로 도망가면 살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수많은 개체와 무리들이 보츠와나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당시에는 수천 마리의 코끼리 개체만이 살고 있었지만 현재 보츠와나 영토 내 국립공원에서 서식하는 코끼리 개체수는 20만 마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1966년 독립 이래 민주정부가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하며 밀렵꾼도 적절히 억제된 결과다. 보츠와나에서 밀렵이 심각하자 6월 19일에 보츠와나 정부는 코뿔소 밀렵을 방지하기 위해 코뿔소의 뿔을 자르기 시작했다.

 

보츠와나의 경제

원래는 현재의 말라위나 남수단만큼이나 최빈국이었다. 하지만 광물들의 발견으로 광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다이아몬드 산업이 발전하면서 현재 보츠와나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보츠와나가 독립 직후인 1967년부터 다수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 채굴이 시작되면서 경제 사정이 나아졌고, 구리 등 다른 지하자원의 개발도 진행되면서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특히 세레체 카마나 페스터스 모 하에 대통령 등이 다른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다르게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사익을 채우지 않고 무상 교육이나 의료 보험, 개발 사업 등을 시행한 덕분에 보츠와나가 아프리카에서는 교육과 의료, 인프라 등의 지표가 우수한 편에 속한다. 다만 광업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는 경제라서 산유국처럼 다이아몬드가 고갈된 후에 대한 우려 역시 있다. 실제로 2009년의 불황으로 다이아몬드 가격이 떨어지자 보츠와나는 경제 성장률에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이에 이언 카마 대통령은 다이아몬드 외의 자원 개발과 함께 보츠와나를 남아공의 제조업 및 산업 관문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2015년에도 다이아몬드 가격의 하락이 계속되는 추세라 보츠와나 입장에선 큰 근심거리. 다이아 가격 하락에 휘청이는 보츠와나, 드비어스 겨눠 광업 외에는 농업과 목축업, 공업 등이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여러모로 광업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서 산업의 다각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가의 북부에 위치한 초베국립공원 관광수입으로도 어느 정도의 수입을 잘 거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다이아몬드 의존형 경제체제를 타개하기 위해 과학기술에 대해 국가단위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인구가 워낙에 적어 국가적 사이즈로 해볼 만한 게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땅 면적이 한반도의 약 3배인데 인구는 경상북도 인구보다도 적어 250만이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출산율이 2.65명으로 대체 출산율보다 높기에 점진적으로 증가 추세긴 하나 일정 규모 이상 올라가려면 시간이 한창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니계수는 2013년 기준 0.605로 매우 높은 편이다. 남아공보다 약간 낮은 수준. 2004년 6월 4일에 세계경제포럼은 보츠와나를 아프리카에서 국가경쟁력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밝혔다.

 

보츠와나의 생활

부유한 편에 속하는 경제력과는 별개로 생활 면에서는 안정적인 나라는 아닌데, 에이즈가 창궐하는 국가라서 국민의 평균 수명을 깎아먹고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전 인구의 36%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며, 평균 수명은 50세 정도(UN 2005-2010) 혹은 60세 정도(CIA 자료). 이것도 2000년경 40세 미만으로 떨어졌던 시절보단 호전된 것이다. 오죽 이렇게 평균 수명도 낮고 에이즈 보균율이 심각하면 한때는 평균 수명이 29세까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을 정도다. 지금은 2020년대니 많이 달라졌을 듯. 그래도 타 아프리카 국가보다는 평균 수명이 긴 편.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엔 평균 수명 64.49세를 기록했다. 이는 아프리카에서는 손꼽힐 만큼 의료 서비스나 행정체계가 잘 갖춰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구의 20% 이상이 에이즈에 감염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고 당시 개발된 치료제를 도입하는 비용이 개발도상국인 보츠와나가 도입하기는 무리였으나, 제약회사와 협상하여 수백만 국민에게 투약한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도입했다고 한다. 덕분에인지 보츠와나에선 에이즈 치료약을 현지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공급해준다고 한다. 인구의 80%가량을 츠와나족이 차지하기 때문인지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민족갈등요소가 적은 편이다. 다만 츠와나족은 보츠와나보다 이웃나라인 남아공에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 특이점이라면 특이이다. 츠와나족 외에 부시맨으로 알려져 있는 산족이 이 나라에 조금 살고 있는데 보츠와나에서는 바사르와(Basarwa)[라고 부른다. 인구에서의 비중은 약 3% 정도로 인구 절대다수가 츠와나족인 보츠와나에서는 소수민족문제는 산족 거주 지역이 다이아몬드 산지라 그런지 어쨌는지 보츠와나 정부가 1990년대부터 자연보호를 명목으로 산족의 생업인 사냥을 금지하고 산족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경찰이 산족을 쏴 죽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여튼 그렇게 2/3 가량이 강제이주당한 산족은 보츠와나 정부에 소송을 걸었으나 기각당했고, 다시 소송을 걸었다. 그러다 결국 2006년 보츠와나 법원이 보츠와나 정부의 산족 강제이주는 불법이라고 판결 내렸고, 산족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보츠와나 정부는 보호구역 내에 우물을 파는 것도 물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도 가축을 기르는 것도 수렵을 하는 것도 사실상 모두 금지해 실질적으로는 산족이 돌아올 길을 봉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22년 기준으로는 보츠와나 본국 자체의 인구가 3백만 명도 넘지 못하는 인구 소국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내에 이태원동 등의 외국인 밀집 지역들에서 세츠와 나를 써서 대화하는 아프리카인들을 적잖이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의외로 보츠와나 본국에서 부유층에 해당되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이주해 온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유는 보츠와나 본국에서 교육을 잘 받은 상류계층일수록 현재 보츠와나 경제가 아직도 다이아몬드 채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만에 하나 다이아몬드 채굴의 채산성이 급락하기라도 할 경우를 대비해서 먹고살만한 한국으로 이주해 오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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